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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랑탕. 욕심에서 헤메이다.
    여행/해외여행 2013. 6. 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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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랑탕. 욕심에서 헤메이다.


    2년전 안나푸르나를 다녀온 후 눈높이가 달라져 버린 나에게 산이란 그저 하늘아래 뫼일 뿐이였다.

    하늘과 땅의 경계에 서 있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그 후 2년이 지나 난 히말라야 랑탕에 서 있었다.

    97일간의 자유배낭여행.

    등산모임에서 만난 형님과 누님 이렇게 3명이 97일간의 여행을 시작한건 2013 1 30

    인도을 지나 네팔로 들어설 때쯤 히말라야가 날 부르는게 느껴졌다.

    묘한 흥분감. 그것이 나에게 아드레날린이 충만하게 만들고 하늘에 떠있는 구름이 된듯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15일간의 랑탕&코사인쿤드,할람부 트레킹을 하기 위해 네팔에서 준비할 것들이 많았다.

    네팔에서 합류하기로 한 한분과 함께 총 4명이 가이드와 포터 없는 랑탕과 코사인쿤드, 할람부까지 트레킹을 진행 하기로 한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산에서의 위험을 잘 알고 있기에 여행 전 많은 정보들을 분석하고 또 분석하였다.

    가이드가 있다면 이런 고생을 할 필요가 없었겠지만 우리는 가이드와 포터 없이 이 일을 행하려 하고 있기에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사브르베시를 출발한 첫날 우리는 랑탕과 코사인쿤드로 가는 길목에서 1시간을 헤메었다.

    직접가보지 않은 곳. 그곳에서 단지 인터넷만으로 찾은 정보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린것이다.

    그렇게 1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행인을 만난 우리는 제대로 된 랑탕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2년 전 안나푸르나에서 고산병으로 고생한 경험이 있기에 이번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몸에 무리가 가는 행동을 자제하면서 아주 천천히 체력소비 없이 이동하는데 주력하였다.

    그렇게 노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4일이 되는 날 칸진곰파에 도착할 때쯤 나를 제외한 세분에게 고산병이란 녀석이 찾아왔다.

    산행에 힘듬이야 천천히 쉬면서 오르면 그만이지만 고산병이란 녀석은 우리에게 어김없이 많은 시련을 만들어 주었다.

    고산병으로 힘들게 올라 선 칸진곰파에서 3일을 보내기로 하였다.

    랑사시카르카와 체리고리를 다녀오기 위해서였다.

    언제 또 이곳에 올라와 보겠냐는 생각과 이곳에서 보는 모든 것들이 내가 살고 있는 그곳에선 볼 수 없는 것들 이기에 우리가 본 이 자연의 경의로움을 영혼에 담기로 한 것이다.









    히말라야에서 어느 탐험가가 야크를 쫓아 너무 아름답게 펼쳐진 계곡을 보고 만들었다는 이름 랑탕

    랑사시카르카 이곳이 아마 랑탕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낸 곳이 아닌가 란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넓은 목초지에 흐르는 강. 설산이 그 주위를 두르고 있기에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허나 많은 트레커들이 랑사시카르카를 다녀오지 않았다.

    그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왔지만 시간이란 녀석에게 얽매여 정말 소중한 것을 놓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움의 극치인 랑사시카르카를 다녀온 후 고산병에게 육체를 내어준 두분의 누님들을 뒤로 한 체 까만콩형님과 나는 체리고리를 등정하였다.

    나의 자만심 때문일까?

    체리고리 7부 능선에서 갑작스럽게 나의 육체를 지배해버린 고산병에게 난 꼼짝없이 육체을 내어주었다.

    우리 중 최고의 연령이신 까만콩 형님께서 체리고리 정상 사진을 찍고 있는 동안 난 고산병과의 사투를 하다 많은 트레커들의 조언을 받고 하산 하기 시작하였다.

    조금의 욕심으로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고산병이란 녀석에게 자유로웠던 나였지만 히말라야 앞에서 나의 자만심이 화를 부른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 고개를 숙이게 하였다.

    체리고리 하산 중 야크집 근처에서 야크 몇마리가 평화롭게 풀을 뜯는 모습을 보니 나의 마음도 평안해 지는 것을 느꼈다.



    마음이 평화로워지자 나에게 찾아왔던 고산병이란 녀석이 조용히 나에게서 떠났다.

    그렇게 3일이 지나고 우리는 다시 랑탕에서 코사인쿤드로 이동하면서 올라올 때 힘들어서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내려가면서 보이는 풍경의 아름다움과 우리가 겪었던 고산병을 안고 올라오는 또 다른 트레커들을 마주하였고, 그 뒤를 따르는 가이드 포터들을 보니 우리에게는 단지 고산병을 동반한 왕복의 멋진 트레킹길일 뿐이지만 이곳에 사는 현지인들과 가이드, 포터들에게는 삶의 무게를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곳일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녀을 위해 자전거를 머리줄에 걸어 가지고 올라가는 이, 물탱크, 철근, 80Kg이 넘어 보이는 음식재료까지...

    나이를 막론하고 이들에게 이 길은 단지 KG당 돈을 받아 먹고 사는 힘든 길일 뿐 이였고 그들에게 보이는 우리는 단지 돈 많고 여유있는 트레커들일 뿐이였다.

    나도 이곳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에 있었다면 그들과 똑같은 인생의 삶을 짊어 진 많은 사람 중에 하나였으리라.

    코사인쿤드에 오르자 네팔의 국화인 랄리구라스의 향기가 산을 머금고 있었고 소나무 숲길로 피톤치드가 몸으로 느껴지며 많은 다육식물들이 우리가 걷고 있는 길 옆으로 우리를 반겨 주었다.





    이렇게 산을 걷고 있을 때 많은 인도인이 나타났다.

    코사인쿤드에 있는 힌두 사원에 가기 위해서 많은 젊은 남녀들이 이 힘든 히말라야를 오르고 있었다.



    많은 호수들이 있는 이 곳.

    그들에게 이곳은 시바신이 만든 신성한 호수였다.

    코사인쿤드를 넘을 때 산악 마라톤을 하는 이들이 있었고 우리는 그들에게 환호를 해주었다.







    그들을 뒤로 한 체 우리는 마지막 고사인쿤드를 넘어 라우레비나야크 패스를 넘었다.

    이렇게 우리는 또 하나의 히말라야를 넘었다.

    랑탕에서의 고생으로 인해서인지 라우레비나야크 패스를 넘을 때 고산병이란 녀석이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았고, 히말라야 3대 트레킹 중 하나인 랑탕&코사인쿤드, 할람부를 끝내고 그곳을 풍경을 영혼 속에 담아 내가 사는 곳 서울에서 되뇌인다.

    자연의 위대함 속에 내가 가졌던 조급함과 욕심이 조금은 사라지자 마음의 평안과 행복으로 삶을 감사하게 만든다.



    2013년 06월 06일 박효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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