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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삭한 맛 '반동치미'여행/먹을거리 2010. 1. 27. 20:39반응형
“요것이 뭐시당가! 희한하게 생겼구만이라! 동치미는 동치민디, 우째 반토막이여! 쬐깐한 게 애기들 맹크롬 생겼구만!” ‘밀양 박씨 나주 종가’의 종부 임묘숙(83) 선생이 대청마루에 동치미를 내놓자 이 댁을 찾은 이들이 한마디씩 한다. 임씨가 “이거이, 반동치미여, 울 집에서 많이 해먹제”라고 대답한다. 지난해 12월 16일 종부, 임씨와 그의 아들, 박경중(63)씨가 살고 있는 고택이 중요민속자료 제263호로 지정이 되면서 방문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이름도 ‘나주 박경중 가옥’에서 ‘나주 남파 고택’으로 바뀌었다. 남파는 박경중씨의 고조부 박재규 선생의 호이다. 이 댁의 종손은 박경중씨다. 그는 조선 인종 때 지방관헌을 했던 박부동 선생의 15대손이다.
누이의 분홍빛 저고리같은 빛, 국물이 끝내~줘요!
종부가 선보인 ‘반동치미’는 이 집의 내림음식이다. 모든 재료가 동치미의 반이라서 붙인 이름이다. 세상의 ‘반’은 상실과 부족, 결핍을 떠오르게 하지만 임씨의 ‘반’은 다른 세상의 풍족함을 보여준다. 반동치미의 국물이 알려주는 종부의 넉넉한 맛의 세계다.
이 댁 반동치미는 국물색이 발그스레하다. 우리 누이 분홍빛 저고리 같다. 이 국물색의 정체는 무엇일까? 임씨가 알려준다. “고추가루제, 고춧가루, 우리 집 반동치미에는 빨간 고춧가루가 쬐까 들어가부러.” 임씨의 반동치미는 섬세하다. “무 잎삭 달린 거, 고놈 중간 크기로 고르고, 3쪽, 4쪽 잘라~.” 그렇게 십자로 무나 배추를 자르고 그 안에 갖은 채소와 과일로 만든 소를 채워 넣는다. 소는 새우젓국과 고춧가루로 버무린 것이다. 살짝 뿌린 고춧가루가 시간이 지날수록 반동치미 국물 사이로 물감처럼 번진다. 색의 비밀이다. 한 입 먹을 때마다 아삭아삭 시원한 맛이 청량한 하늘만큼 깨끗하다.이 댁의 음식에서 반동치미만 신기한 것이 아니다. 지난 12월12일 박경중씨의 증조부 박정업씨의 제사에는 고서적 같은 향긋한 음식들이 즐비했다. 노련한 대장장이처럼 임씨는 눈 깜박할 사이에 뚝딱뚝딱 진수성찬을 만들었다. 이른 아침부터 나서 며느리, 손주며느리, 서울에서 온 친척 아낙네까지 진두지휘했다. 금방이라도 툭하고 튀어오를 것 같았던 민어, 조기, 병치, 돔, 굴비는 종부의 손을 거치자 노르스름하고 얌전한 생선들로 변했다. 임씨는 손주의 머리를 쓰다듬듯이 생선의 매끄러운 껍질에 고소한 양념(간장, 마늘, 파, 깨, 참기름)을 바르고 석쇠 사이에 끼워 넣고는 숯불에서 구웠다. 고기집도 아닌데 신기하다.
손주며느리 김선경(31)씨는 “저는 못해요. 할머니만 하시죠. 잘못 익히면 생선껍질들이 금세 벗겨져요. 제사상에 못 올리죠. 적당한 불을 아세요.” 김씨는 할머니, 임묘숙 선생의 음식솜씨에 대해 할 말이 많다. “같은 나물인데도 할머니가 하시면 맛이 달라요. 3년째 배우고 있는데 쉽지 않아요. 할머니는 제사 일주일 전부터 밑간을 하시고 준비하세요. 전날 장을 다 보시고요, 친정어머니께 죄송하지만 맛이 완전히 달라요. 종가의 음식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탈리아에서 성악을 공부한 세련된 김씨의 눈에는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고추전도 특별하다. 커다란 고추의 배를 갈라 그 안에 다진 쇠고기와 채소들을 넣은 고추전은 빵빵한 소시지 같다. 구운 홍어 맛도 도통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다. 홍어를 굽고 난 다음 양념(간장, 깨, 파, 참기름)을 바른다. 하나하나가 정성스럽다. 이 댁 음식에는 집에서 짠 참기름이 많이 들어간다. 임씨는 전을 지지면서 “그라제, 예부터 참기름이 넉넉해서 많이 쓴당가. 근디 요즘 ‘전철’은 안 좋아, 옛날 것이 좋았지”라고 말을 잇는다. 전철? 지하철이 아니다. 임씨가 프라이팬을 부르는 명칭이다.
7년 만의 첫 외출이 ‘할아버지’와의 첫 데이트
종부 임묘숙 선생은 18살 때 박씨 가문의 독자 박승근 선생과 결혼했다. 임씨가 시집와서 7년 만에 한 외출이 ‘할아버지’와 한 첫 데이트였다. “나갈 일이 없제, 바느질 하는 참모, 애기 봐주는 애기 다 집에 있고, 필요한 것도 일하는 사람들이 다사다주니깅, 나가면 또 소문나, 박씨 각시 왜 나왔지 하고.” 엄한 양반 댁이었다. “할아버지(박승근)가 내 손을 잡고 나주역으로 가는 거여, 그때께 광주에서 제재소를 좀 했제, 손 꼭 잡고 미장원이랑라는 델 델고 갔어.” 수줍은 임씨의 긴 생머리는 발랄한 파마머리로 변했다. “그 양반이 만두를 사줬어, 어찌나 맛난지.” 박승근 선생이 36살에 병으로 요절하는 바람에 임씨는 31살에 혼자가 되었다. 박경중씨가 11살 때다. 임씨는 평생 그 추억을 가슴에 담고 산다.
부부금슬은 좋았다. 대대로 자손이 귀했던 이 집에서 임씨는 6형제를 낳았다. 애처로워서 아끼고, 순해서 챙겨주고, 기특해서 보듬어주는 며느리였다.유달리 손님 치르는 것을 좋아했던 시어머니의 성품 때문에 집안에는 늘 30~40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손님과 집안사람들의 끼니, 집안 행사는 임씨가 주로 챙기는 일이었다. “시아버지가 밉기도 했제, 10시에 아침상 받으시고 3시에 점심상 받으시고 저녁 9시에나 저녁 자시는 거야, 겨울에는 얼마나 춥던지, 상 차리는 게 힘들었어.” 임씨는 초등학교만 졸업했지만 동네에서 현명하다고 소문난 종부였다. “그때께는 화순(임씨 고향)에 중학교도 없었어, 촌이라, 양반집이라서 (외지로) 여자 혼자 못 보냈지.”
예부터 종부의 미덕 중에 최고는 ‘잘 나누는 것’, ‘잘 베푸는 것’이다. 임씨는 ‘나누는 것’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짱’이었다. 임씨는 제사가 끝난 후 그 많은 음식을 친인척과 오신 손님들에게 나눠주었는데 그 방법이 기가 막혔다. 똑같은 양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다. 어느 집은 노인이 많으니 부드러운 음식을, 어느 집은 애기들이 많으니깐 단 과자를, 집집마다 사정에 맞게 바리바리 싸주었다. 할머니가 나눠준 음식을 보따리에 싸서 집에 갈 때쯤이면 모든 이들의 얼굴에 한가득 미소가 번졌다.신식인 둘째 며느리는 누리집 만들어 할머니표 된장 선봬
‘밀양 박씨 나주 종가’는 6대조부터 부농이었다. 5대조 박성호, 4대조 박재규를 거치면서 나주 땅 반은 ‘밀양 박씨 나주 종가’ 것이라고 할 정도였다. 나주사람들은 배를 곯지 않기 위해 아침나절이면 이 댁의 일을 해주러 몰려들곤 했다. 하지만 세상사 늘 한결같지 않다. 박경중 선생은 “우리 증조부 박정업 할아버지는 한량으로 인심이 후한 양반이었제. 아버지 몰래 일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더 주고 그랬제. 근디 10년간 친구한테 빚보증을 잘못 서서 재산을 거의 날렸제. 그 화병으로 세상 뜨셨어”라고 말한다.
임씨의 시아버지인 박준삼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였다.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를 다니던 21살 때 3·1운동에 앞장섰다가 종로경찰서에서 옥살이 했고 일본 유학을 다녀온 후에도 고향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신간회’나주지회 상무위원,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나주협동상회’를 만들어 일본상인들의 상권과 경쟁했다.1945년에는 건국준비위원회 나주지부 위원장을 지냈다. 1960년에 설립한 청운야간중학교는 돈이 없어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학교였다. 청운야간중학교는 1963년 나주 한별고등공민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았다. 부농이었던 선대에는 독립자금을 조달하기도 했다. 박준삼 선생의 동생 박준채 선생은 광주학생독립운동(1929년 11월3일 일어나 전국으로 확산된 학생독립운동)을 주도했고, 도화선이 된 여학생 박기옥과는 사촌이었다.
종손 박경중 선생은 아버지보다는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더 많다. “울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영문학 공부했는데도 한글운동에 열심히 셨어. 제문도 한글로 쓰셨제.” 그는 할아버지 말씀이라면 꼼짝을 못했다. “전남대학교 법대를 가고 싶었는데 할아버지가 기어코 농대로 보내버렸제. 농사만 지으라고.” 그는 군대 갔다 와서 농사 짓고 소를 키웠다. 성실하게 일한 만큼 보람도 따랐다. 1986년부터 1995년까지 나주문화원장을 지냈고 이어서 전라남도의회 의원을 두 차례 지냈다. 그의 아내 강정숙(59)씨와는 연애결혼했다. 강씨가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주 한별고등공민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면서 사랑이 꽃폈다. 그는 지금 나주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경중 선생은 슬하에 쌍둥이 남자형제와 딸을 두었다. 큰 아들 박준영(34)은 서울에서 외국계은행을 다니고 있고 재작년에 아들 박준량을 얻었다. 박경중씨는 “우리 준량이한테 거는 기대가 크제, 우리 종손이여”라며 웃는다. 박씨의 둘째 며느리 김선경씨는 최근 누리집(www.npgotaek.com)을 인터넷 세상에 띄웠다. ‘남파 고택’이라고 이름 지은 할머니의 된장을 세상에 선보이는 장터다. “할머니 된장이 너무 맛나요, 건강한 음식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어요.” 종부 임씨의 손맛이 현대적인 모습으로 이어간다.임묘숙 종부가 전해주는 ‘반동치미’
1. 크기가 작은 배추나 무를 골라 길게 세로로 자르고 소금을 친다. 한나절 둔다.
2. 그 안에 여러 가지 채소와 과일로 만든 소를 넣는다.
3. 소는 잘게 썬 당근, 파, 쪽파, 미나리, 청각, 배, 석화, 무, 생밤채, 마늘채 등을 끓인 새우젓국물 조금과 고춧가루로 버무린 것.새우젓국은 새우젓(1)과 물(5)을 섞어 끓인 것이다.
4. 그런 다음 이것을 끈으로 묶는다.
5. 이때 으깬 마늘과 생강이 들어간 작은 주머니를 만든다. 항아리에 바닥에 납작하게 썬 무를 깔고 묶은 동치미를 쟁여둔다.
6. 주머니와 사과와 배 조각, 청각을 사이사이에 끼워둔다.
7. 자른 납작 무로 맨 위를 막는다. (먹을 때는 이 무를 거둬낸다)
8. 끓여두었던 새우젓국물을 3일후에 붓는다. 동치미 위로 찰박찰박 찰 정도로.반응형'여행 > 먹을거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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